2023년 회고
인생의 바닥을 지나며...
2023년은 사실 계획적으로 살지 않았고, 상황의 변화에 대처하며 살았다. 기억을 되살려보면, 아래와 같은 일들이 있었다.
축적자산 초기화
작년 하반기에 5억원이 넘었던 순자산이 마이너스 1억원까지 떨어졌었다. 역사에서만 봤던 대폭락을 연초에 경험했고, 수년간 모았던 테슬라가 반대매매로 잘려나갔다. 다행하게도 회사에 대한 확신은 많은 공부를 통하여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반대매매를 받은 날에 청산 위험이 없는 형태의 레버리지를 다시 일으켜서 연말에는 순자산을 1.5억원 수준으로 회복했다. 이 과정에서 거시 경제의 거대한 물결은 개별 종목이 절대로 거스를 수 없다는 부분을 배웠고,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다. 특히 과거의 나에게 조언을 하자면 아래와 같은 말들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 주식담보대출은 절대로 이용하지 말아라.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써야만하는 이유가 있어야만 활용해야 한다.
- 레버리지를 활용하고자 하면, 차라리 레버리지 상품을 이용하도록 해라. 테슬라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TSLL, TSLT, TSL3 등 다양한 레버리지 상품이 있었는데, 이를 활용하면 청산 리스크 없이 레버리지를 활용할 수 있었다. 참고로 레버리지 상품은 변동폭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숨겨진 비용이 있어서 우상향 하더라도 손실을 볼 수 있다 (변동성 끌림, 금리에 연동되는 기타 비용).
20명이 넘는 인원감축
하얀마인드에서 두 차례에 걸친 인원 감축을 포함한 구조조정을 겪었다. 연초에 30명에서 20명으로, 연말에는 20명에서 10명으로 단계적으로 인원을 줄였다. 노무사의 조언에 따라서, 인원감축 면담 전체를 대표이사인 내가 직접 진행하였고 작지 않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한 분은 퇴사하며, '역시 스타트업은 다 똑같군요'라는 말을 남겼는데, 올해 들은 말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다. 그분의 인생에서 스타트업이라는 단어를 내가 삭제한 것 같아서, 아직도 큰 미안함이 있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이 과정에서 회사의 본질은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며 이 본질적 전제가 깨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사업을 진행해야된다는 것을 배웠다.
올해 실수했던 부분은 회사의 미래에 대해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하여, 인원감축을 두단계로 나누어 진행했다라는 부분이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훨씬 더 보수적으로 1월에 10명까지 인원감축을 했어야 했다. 특히 S모 투자사의 투심 보고서 진행, Y사와의 M&A, 다수의 정부지원사업 선정, IBK의 벤처대출 프로그램 등 낙관적 편향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냉정함을 잃지 말았어야 했다. 또 후회되는 부분 중에 하나는 불필요한 몇몇의 정부지원사업들과 두바이에 투자 연계 프로그램을 다녀왔던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실제 기회로 연결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시간을 많이 낭비했던 것 같다.
비용절감을 위한 인원감축 외에도, 지인들에게 연락을 해서 약 1억원의 유상증자도 진행하였다. 내가 쌓아왔던 신뢰자산을 굉장히 많이 사용하였고, 고맙게도 10명 가량의 지인들이 회사 정상화를 위한 자금을 지원해주었다. 회사 주주명부에 꽤 많은 기관과 개인 주주분들의 이름이 올라가있는데, 어떻게 해서든 투자금 회수는 책임지고 해볼 생각이다.
생애 첫 주택 매수
내 짝꿍 S의 서울 공공기관 취업 성공으로 함께 서울로 올라오게 되면서, 생애 첫 주택을 매수했다. 테슬라의 투자 실패를 경험하며 안전마진에 대해 많이 고민했던터라, 주택 매수에 있어서도 이를 최대한 확보하고자 했다. 올해 나에게 영향을 많이 주었던 책 중에 하나는 '투자의 재발견' (저자: 이고은)이라는 책인데, 여기서 나는 현금 흐름 기준으로 모든 투자를 바라보라는 배움을 얻었다 (특히 밸류에이션이 애매한 성장주 투자자로서 반성을 많이 했다). 주택 매수의 전략을 한줄 요약하자면, 은행에 납부하는 이자가 월세보다 꽤나 낮아진 구간이 발생하게 되어서 고민 없이 배로 매수했다 (이는 예전에 존리 대표가 미국에서 첫 주택을 매수했을 때의 상황과 같다) 주거비 절감 외에도, 더이상 부동산 뉴스 및 시세 동향을 파악하지 않아도 되어 정신적 편안함 및 여유도 함께 얻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S와의 관계도 더 좋아졌던 것 같다. 항상 장기적으로는 서울에 자리를 잡고 싶다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S가 1년 넘게 힘들게 노력해준 덕분에 너무 감사하게도 풀 수 없던 숙제가 갑자기 풀린 느낌이다. S는 수도권에 전혀 연고가 없어서, 상경할 때 걱정이 엄청 많았었다. 나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책임의식이 강하게 있었기 때문에, 주택 매수가 훨씬 수월했던 것 같다.
다시 시작한 운동과 피아노
회사가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운동을 하지 않았었는데, 2023년 하반기에는 운동을 시작하였다. 우선 대전에서 PT 60회를 결제하여 거의 다 밀도있게 소진을 하였다. PT 선생님(윤석주)과 너무 합이 잘 맞아서, 너무 즐겁게 운동하면서 웨이트 트레이닝에 대한 이해도도 한단계 올라갔다. 서울에 올라온 뒤로는 수영, 요가은 루틴화해서 하고 있고, 강남 사무실 근처에서 스쿼시도 시작해서 열심히 즐기고 있다. 운동은 건강관리 차원에서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온전히 일에만 동화되어 있는 나의 뇌에 휴식을 준다는 점에서 생산성이 오히려 높아지는 것 같다. 특히 수영은 어렸을 때 빡세게 배워놓아서 그런지 바로 고급반으로 입성을 한 부분도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웠다.
서울에 올라오며, 잠시 쉬었던 피아노도 다시 시작했다. 건대입구역 인근의 피아노 학원을 등록해서 몇달동안 손만 좀 풀려고 했는데, 의외로 레슨 선생님(박미연)의 수업이 너무 좋아서 한동안은 이곳에 정착하게 될 것 같다. 다만 피아노 연습을 하는 동안 온전한 집중이 필요한데, 아무래도 일이 바쁘다보니 아직은 완전 몰입 상태에 들어가는 것은 어려운 것 같다. 어느정도 손가락이 돌아온 뒤, 2024년에는 아마추어 콩쿨도 한번 나가보고 싶다.
새로운 인연
- HY: 나는 깊은 인연을 새로 잘 만들지 않는데, 정말 오랫만에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생겼었고 친해졌다. 스쿼시를 시작하게 된 계기 중 하나도 이분이 '나와 친해질 기회'라고 한 점이 크게 작용했다. 처음으로 사이드 프로젝트(릎)도 해보고, 서로가 긍정적인 자극과 배움을 많이 나눌 수 있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친하게 지내고 싶다.
- JW: 특별한 계기는 없는데, 어쩌다보니 꽤 친해졌다. 뭔가 챙겨주고 싶은 동생 느낌이 있다. 세상이 정해놓은 틀에 갇혀 살지 않는 모습이 보기 좋다.
기타
그 외에 캘린더를 살펴보니,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 재미있던 일들:
- 언더독스의 창업퍼실리에이터 활동을 했던 것: 창업에 진지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없어서 시간이 아까웠음.
-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와 다수의 스타트업 리딩클래스 세미나를 진행했던 것: 나의 오랜 벗 E의 SNS 마케팅 관련 세미나가 너무 인상 깊어서 기억에 남음.
- 부모님과 '태양의 서커스'를 보러갔던 것: 꼭 한번 가족들이랑 보러 가고 싶었는데, 다행하게도 내한을 해줘서 너무 좋은 시간을 가졌음. 업무로 너무 피곤한 상태에서 들어갔는데, 2시간 동안 1초도 졸지 않았음.
- 조카 돌잔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정말 오랫만에 친척들을 만났음. 세월의 흔적을 많이 느꼈음.